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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겪어온 20년의 단절이 증명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때로 가장 깊은 상처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가 뒤섞인 유년 시절, 그리고 그 이후 스스로 택한 심리적 독립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봅니다.



훈육이라고 불렸던 것들의 실체 — 신체적 학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엄한 교육'은 자식을 강하게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은 그 어떤 교육적 의도로도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날의 집안 공기는 문을 열기도 전에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차갑고 팽팽한 정적, 그리고 곧 이어지는 폭언과 물리적 충돌.

여기서 신체적 학대(physical abuse)란, 의도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가해 신체에 상해나 통증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공포 그 자체를 몸에 새기는 행위입니다. 제가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중 지금도 손이 떨리는 기억이 있습니다. 오빠가 고작 다섯 살이던 해,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유리 재떨이로 오빠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오빠는 그날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을 '훈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언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끝끝내 그 표현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로 서 있었고, 그 무력감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신체적 학대는 피해자의 몸이 아니라 존재 전체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제 경험상 너무나 잘 압니다. 출처: 위키백과 — 학대

  • 신체적 학대: 의도적 물리적 힘으로 상해·통증을 가하는 행위
  • 피해 대상은 주로 심신이 연약한 어린이, 노약자 등 저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
  • 가해자가 '훈육'이나 '교육'으로 포장할수록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음
요약: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신체적 학대는 피해자의 몸과 마음 모두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깁니다.
 
 

                                                                            가족의 상처와 유년 시절의 기억

눈에 보이지 않아 더 깊었던 — 정서적·심리적 학대

신체적 폭력보다 어쩌면 더 오래 남은 것은 말과 분위기였습니다. 상담학에서 정서적·심리적 학대(emotional and psychological abuse)란, 공갈·모욕·위압 등 언어 또는 비언어적 수단으로 상대에게 정서적·심리적 고통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상대의 내면을 무너뜨리는 모든 행위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집 안의 공기를 읽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아버지의 기분이 어떤지, 오늘은 괜찮은 날인지 아닌지를 현관문 소리만으로도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 긴장 상태가 매일 반복되는 것 자체가 이미 심리적 학대의 환경 안에 있었다는 뜻이라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폭언은 또 다른 종류의 상처였습니다. "잘되라고 한 말"이라는 포장 아래 쏟아진 말들은 어린 마음에 '나는 부족한 존재'라는 각인을 남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제 경험상 그 상처의 깊이와 지속 기간은 오히려 더 길었습니다. 몸의 상처는 아무는 시간이 있지만, 내면에 새겨진 공포와 수치심은 훨씬 더 오래 자리를 지킵니다.

2남 1녀 중 둘째였던 저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그 모든 장면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차라리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지금 떠올려도 서늘합니다. 그 생각이 얼마나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인지를, 당시의 저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약: 정서적·심리적 학대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오랫동안 피해자 내면에 머물며, 신체적 상처보다 치유가 더 어렵습니다.

 

20년의 단절이 말해주는 것 — 가족과의 절연

결혼과 동시에 저는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끊었다'는 표현이 너무 차갑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20년입니다.

그 사이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오빠와 연락을 유지하고 계셨는데, 어느 추석 명절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핸드폰을 빼앗아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 전화로 걸면 받을 테니"라며 속임수를 쓴 것이었습니다. 오빠는 목소리의 주인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상처와 배신감에 어머니와의 연락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제가 가장 씁쓸했던 것은 아버지의 방식이었습니다. 화해를 원한다면, 그것은 진심을 담아 직접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설픈 접근이 오히려 어머니와 아들 사이마저 갈라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가족 단절(family estrangement)이란 단순히 서로 연락을 끊는 것이 아닙니다. 쌓이고 쌓인 상처가 더 이상 감당되지 않을 때, 피해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경계선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식이 부모와 절연하면 '패륜'이라는 시선이 따라붙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판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뒤바꾼 것입니다.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결정에 죄책감을 얹는 것은 2차 가해에 가깝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요약: 가족 단절은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피해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경계선입니다.

 

사과 없이도 나아가는 법 — 심리적 독립

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예전의 위세는 사라지고, 몸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한 것은 다 자식을 위한 훈육이었다"는 말은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병상에 누운 채로도 고집과 생각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언가를 내려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과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저를 계속 그 시간 안에 붙들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리적 독립(psychological autonomy)이란, 타인의 인정이나 사과 없이도 자신의 감정과 삶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내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모가 끝내 변하지 않더라도, 그 변화를 기다리는 것을 멈추는 것이 바로 심리적 독립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부모의 반성을 전제로 한 치유는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트라우마(trauma)란 극심한 충격적 경험이 이후의 심리·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문 심리 상담을 통해 이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은 가해자의 사과와 무관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부모의 그림자로부터 내 삶을 분리해내는 것만이 진짜 마음의 평안을 향한 길이라는 것은 이제 확신합니다.

조금만 더 따뜻하거나 최소한의 염치가 있었더라면 우리 가족이 20년을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금'이 없었다는 것도,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서글프지만, 그 받아들임이 지금의 저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합니다.

요약: 가해자의 반성이 없어도 심리적 독립과 전문 상담을 통해 트라우마 치유를 시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요?

A. 일반적으로 신체적 학대가 더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두 가지는 비교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정서적·심리적 학대는 외형적 흔적이 없어 오히려 더 오랫동안 방치되고, 피해자 스스로도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유형 모두 피해자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Q. 부모와 절연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나요?

A. 저도 그 질문을 20년 동안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하지만 절연은 분노의 충동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후회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 결정 덕분에 제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죄책감 없는 건강한 거리두기가 때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Q.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아도 트라우마 치유가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트라우마 치유는 가해자의 반성이나 사과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전문 심리 상담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하고, 심리적 독립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치유의 핵심입니다. 저도 그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사과를 기다리는 것을 멈춘 순간부터 조금씩 숨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Q. 어린 시절 학대가 성인이 되어도 영향을 미치나요?

A. 아동기 학대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 관계, 자존감, 불안 수준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상담학 및 심리학 분야에서 이미 널리 확인된 사실입니다. 제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결혼 이후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전히 제 내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결론

가족학대는 피해자에게 신체적 상처만이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상처를 함께 남깁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을수록 더 오래, 더 깊이 남습니다. 20년의 단절을 선택하고 살아온 저는 그것이 도피가 아니라 생존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끝내 사과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을 멈추고, 심리적 독립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찾은 가장 현실적인 답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비슷한 무게를 짊어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전문 심리 상담을 통해 가해자의 반성과 무관하게 치유를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천륜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내 삶은 그 무게에 짓눌린 채로 멈춰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D%95%99%EB%8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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